7-8월 일기 : 마감, 읽고 정리하기, 여름 휴가
연구 근황
이번 여름 동안은 학위 논문 초고 마무리 작업을 하면서 보냈다.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쉬기, 오전에는 운동과 집안일, 오후에는 읽기와 쓰기 작업을 하는 큰 뼈대를 만들어 놓고 하루하루를 쌓아 올렸다. 마감날이 가까워질수록, 주말에 쉬기가 어려워지긴 했는데… 그래도 주말에는 주말의 분위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1-2시간 정도 일을 하다가 온다거나... 맛있는 빵을 사 먹거나.. 그렇게 나를 달래가면서 일했다. 그런 날들을 하루하루 쌓아 올리다 보니 논문 초고도 다 끝났다…(물론 졸업하려면 이런 마감을 학기 중에 3-4번은 더 거쳐야 함.)
마지막 장이 끝날 기미도 없이 계속 늘어가고 있어서 마감일까지 넘길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장의 구조를 바꾸고 내용들을 재배치하니 이 정도면 완성이라고 할 만큼 마무리는 되었다. 8월 동안은 ‘2페이지 쓰지 않으면 퇴근하지 않기’를 결심하기도 했는데, 그 결심은 대략 2주 정도만 유효했다. 그 이후에는 하루에 얼마만큼 썼는지 생각하지 않고 그날그날 내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읽기와 쓰기와 숙고를 했다. 생산성이 연구자 평가의 지표로 여겨지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습관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한 경험과 읽기와 숙고 없이는 나오지 못한다는 믿음이 있어서 이 습관은 버릴 수 없다.
나는 논문을 읽고 한편에 논문의 내용을 메모하면서 정리하고, 이것이 지금 내가 하는 작업과 어떻게 맞닿을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주제에 관한 연구들이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하는 것은 짜릿하고 통쾌한 느낌을 줘서, 그런 발견을 한 날은 한 페이지를 채 쓰지 못했어도 퇴근할 때 기분 좋게 나올 수 있다. 물론 그 발견을 항상 작업 중인 글에 써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활용하기 어려운 발견일 수도 있고, 막상 써봤지만 지금 작업 중인 글과 좀 맞지 않아서 사용을 보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그 생각을 기록해 놓으면 언젠가 다시 논문들을 뒤적거리다가 그 메모를 발견하고 거기에서 무언가 뻗어나갈 수도 있다고 믿는다. 생산성, 완벽한 연구, 읽은 것을 기억하기에 집착과 미련을 내려놓고… 하루 자고 일어나면 내 몸도, 뇌도, 관점도 리셋되고, 내일의 연구는 내일의 내가 해준다는 생각으로 연구하면 오늘의 내가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다. (나는 진짜 박사 과정 동안 많이 읽고 많이 잊어 먹었다.)
읽고 정리하기와 인공지능
대학생 때는 수업을 듣거나 논문을 읽고 정리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잘 몰랐지만 그럴듯한 글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만 컸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글 쓰는 일에는 자신이 없었고, 글쓰기 과제가 있는 수업을 일부러 피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읽고 정리하는 능력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특히 쓰기를 위해서 이게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요즘에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몰라도, 그럴듯한 글감을 던져주고 글의 구조도 잡아주는 인공지능이 있다. 그렇기에 글 쓰는 일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이나 부담이 덜어졌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말을 읽고 듣고 이해하려고 시도하고 스스로 정리하면서 문제와 글감을 찾아내는 대신, 인공지능 요약을 보면서 문제와 글감을 찾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던져준 글감으로부터 쓰기를 시작하고 검토도 함께 할 수 있으므로, 이 모든 것을 나 혼자 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글쓰기에서 인공지능을 사용하면 작업 속도를 빠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글쓰기에서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어질 것이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검색 엔진과 생산성 앱으로 침투해서, 사람들이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 인공지능은 다양한 인간 활동(특히 예술과 연구 같은 ‘기획’의 성격이 강한 일들)의 기반을 닦아준 ‘경험, 읽기, 숙고’도 점차 위협하고 있다. 연구를 할 때도 직접 논문을 읽고 정리하는 사람이 사라지지 않을까? 어떤 자료를 읽기 결정하기 전에 인공지능한테 이게 글감이 될지 조언을 구하는 경우도 많아질 것이다. 인공지능은 요약된 정보를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글의 구조를 제안함으로써 백지를 채우는 것도 도와준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쉬워지는 것’이므로 이 편의를 누리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인공지능 기술이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분야도 있으며, 이 기술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저번 일기에서 읽었던 책 『몸은 제멋대로 한다』에서도 기계 학습을 위한 영상을 만들거나 공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데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사례가 나온다. 그렇지만 글쓰기에서 인공지능을 쓰는 것은 제재하거나 적어도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쓰기의 모든 단계에서 인공지능을 쓰면 그럴듯해 보이는 결과물을 빨리 만들 수는 있겠지만, 스스로 그 과정을 거치면서 배웠던 것들을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글감을 모으기 위한 읽기를 할 때는 글의 요지와 논증 구조를 파악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글의 내용을 다른 문장과 표현으로 정리하면서 바꿔 쓰는 법도 배울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내 질문을 다듬고 구체화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내 문제의식을 설득하기 위해서 어떤 구조가 적합한지, 어떤 내용이 나와야 논지를 강화할 수 있는지 스스로 고민해 본 사람이 인공지능이 제안해 준 구조 중에서도 더 설득력 있는 것을 잘 판별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글을 쓰면서 나는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 주제에 대한 다른 텍스트를 이해하고 연결 짓고 그에 대해서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쓴다면 최소한의 인지적 노력을 들여서 빨리 뭔가를 만들 수는 있어도, 읽고 쓰면서 생각하는 법은 배울 수 없다.
솔직히 인공지능이 정말로 아이디어를 결과물로 구현하는 일을 쉽게 만드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인공지능의 답변에서 잘못된 정보가 없는지 판별하고, 어디를 어떻게 수정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수정하고, 인공지능이 내가 원하는 방향의 텍스트를 참조할 수 있도록 프롬프팅을 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하고 여기에는 많은 시간이 든다. 사람들이 인공지능에게 적절한 맥락을 제공해서 인공지능의 산출물을 보완하고 수정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사용해서 그럭저럭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것이지, 인공지능만 있으면 내가 만들려는 결과물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해도 더 쉽게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인공지능은 초심자에게 한정해서는 제작의 문턱을 낮춰주는 효과는 있다. 하지만 그 문턱을 넘은 후에도,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빠르고 쉬운 제작만 추구하는 경우에는 제작물의 질도 희생된다. ‘인공지능아, 빨리 그럴듯한 뭔가를 뽑아줘’ 전략을 추구하지 않고 프롬프팅을 위해서 스스로 그 주제에 관해서 충분히 읽고 숙고하고 경험해 보고, 인공지능에게 적절한 텍스트를 제공하기 위해서 직접 자료를 작성하고, 그렇게 해서 나온 인공지능 산출물을 점검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괜찮은 결과물이 나온다면, 인공지능을 사용해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더 쉽다’ 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스스로 몇 개의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을 써본 경험과 더불어 인공지능과 관련된 몇 가지 자료들을 접하면서 갖게 되었다. (김성우,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 팟캐스트 <개념 없는 철학관> 14화 챗 지피티로 날로 먹는 글쓰기 : 이 에피소드는 부분적으로 앞의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아직 안 읽었는데 리뷰 보고 읽고 싶어진 책도 하나 덧붙인다. 장강명, 『먼저 온 미래』) 기술 그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이 기술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 일, 실천과 미끄러짐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일에까지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마케팅, 이 기술을 광범위하게 활용할 때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 변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유하지 않는 문화는 우려스럽다.
여름의 페스티벌들
마감을 위한 읽기, 쓰기로 여름 동안 바쁘긴 했지만, 짧게 여름휴가도 다녀왔다.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갔다 왔지만… 오후에는 숙소에서 논문 쓰고 저녁 공연부터 보기 시작해서 제대로 다녀왔다고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한여름의 페스티벌에서는 어차피 계속 밖에 있지 못한다.. 식당, 숙소, 쿨존 등,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체온을 내려야 하는 것이 지구 가열 시대 페스티벌의 숙명. 그래서 ‘논문 쓰고 밥 먹고 나온 다음 저녁에 공연보기..’도 페스티벌을 즐기는 한 형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봤던 공연 중에서는 혁오와 선셋롤러코스터가 제일 좋았다. 우선 사운드가 압도적으로 좋았고… 공연하는 곡을 하나의 음악처럼 연결하면서 연주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이 늘어지거나 지루하지 않았고, 집중력이 전혀 흐려지지 않았다. 내가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내심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요즘에는 음원도 앨범이 아니라 싱글로 발표하는 경우가 많고, 이런 시도를 하는 음악은 더 찾아보기 어려워서 인 걸까? 8월에는 내내 이 팀의 라이브 앨범만 들으면서 보냈다.
학위논문 마감을 하고 난 다음에도 마감 기념으로 짧게 여행을 갔다. (사실 이건 9월 일이긴 한데, 체감상 9월 초는 여름이니까.. 여기에 쓴다.) 신안의 짱뚱어 해수욕장에서 열린 더 그레이트풀 캠프에 다녀왔는데, 감기몸살 기운이 있는 상태에서 가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눕거나 앉아 있는 상태로 음악을 들었다. 페스티벌 사이트가 크지 않아서 캠핑장에 눕거나 앉아서 몸의 감각에 정신을 집중하면 베이스와 드럼의 비트에 맞춰서 몸이 진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호선 버터플라이는 펜타포트에서도 봤지만, 펜타포트보다 이 페스티벌에서 사운드가 딱 이 팀에 맞게 잘 뽑혀 나온 느낌이었다. 숲 속 공연장에서 들었던 여유와 설빈 공연도 무척 좋았다. (이 팀은 내가 이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직접 본 몇 안 되는 팀이다..) 숲 속 공연장에 가는 길은 미니 트래킹에 가까울 정도로 멀었지만, 그래도 가는 길에 듬성듬성한 소나무 너머로 펼쳐진 해변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두 페스티벌 모두 마감을 앞둔 상태, 감기로 골골거리는 상태에서 갔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잘 놀고 왔다. 무리하지 않고 쉬엄쉬엄. 누워서 음악을 듣고 해가 지기 전까지는 책을 조금씩 읽기. 집에서 싸 온 야채와 빵을 먹고 너무 과식하지 않으면서 놀기. 내년에는 어떤 다른 마감이나 병의 기운이 나를 괴롭힐지 모르겠지만, 제약이 있어도 그 안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은 여전히 남아 있고, 그것들을 발견하는 것도 삶의 기쁨이다.
짱뚱어 해수욕장에 있는 놀이터.
페스티벌 기간에는 출입이 금지되었다. 이 때 바다수영을 못해서 아쉬웠다. 당근에서 스노클도 샀는데… 바다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가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보다가 햇빛에 몸을 맡기고 눈을 끔뻑거리다가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