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월 일기 : 건강 관리, 학술대회 발표

난청과 건강 관리

3월은 건강이 좋지 않았다. 헌법재판소 판결이 늦어지면서 신경을 곤두 세운 날이 많아서 그런지, 돌발성난청, 다래끼, 소화불량 등 스트레스성 질환이 한 주마다 하나씩 생겨났다. 그중 난청은 처음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갑자기 한쪽 귀가 먹먹하다고 느꼈다. 소리는 들리긴 했는데 귀가 꽉 찬 느낌이 신경 쓰이고 싫었다. 친구에게 말하니까 그런 증상이면 돌발성 난청일 수도 있고 난청으로 인한 청력손실은 회복되지 않으니 빨리 이비인후과에 가라고 해서 바로 갔다. 귀 먹먹함에도 여러 원인이 있어서, 감기 기운이 있는지, 고막에는 문제가 없는지를 살피고 마지막으로 청력검사를 했다. 청력검사실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다. 조그만 방음실에 들어가서 헤드폰을 쓰고 소리를 들을 때마다 손에 쥔 조이 스틱의 작은 버튼을 클릭하는 식이었다. 검사 결과 왼쪽 귀의 저주파 소리에 대한 청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나왔다. 나는 이명은 들리지 않았는데, 보통은 난청이 더 진행되고 이명이 들리는 시점에서야 이비인후과에 오기 때문에 스테로이드를 고용량으로 처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나는 초기에 발병했을 때 와서 스테로이드를 적게 처방받았다.

스테로이드를 먹으면서 돌발성 난청을 치료하는 동안 피해야 할 것들이 있었는데, 커피(그 외에 카페인이 든 모든 음료), 술, 짠 음식이었다. 또 과로하면 안 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의사가 피하라고 말한 모든 것들이 전부다 한국인들의 생존을 위한 포션이자 기본장착 스탯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커피랑 운동 외에는 특별히 줄여야 하는 것은 없어서, 원래 식단을 유지하면서 휴식 시간을 조금 더 늘리는 일주일을 보냈다. 그렇지만 하루에 한 번 커피 내리는 것이 루틴의 일부여서 커피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어색했다. 쉴 때는 누워서 몸만 풀어주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책을 읽든, 영상을 보든, 소셜 미디어를 훑든, 휴식 시간에 뭔가를 읽거나 보는 것 자체를 그만두기가 어려워서, 버스나 지하철 타고 다닐 때 핸드폰 안 보기, 잠들기 30분 전에는 뭔가를 읽거나 보지 않기, 소음이 큰 환경에서 음악이나 팟캐스트 안 듣기… 정도로 나랑 합의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일주일, 감각적 자극을 약간 줄인 일주일을 보내면서 카페인 성분이나 내 감각 기관이 작동하는 환경, 나에게 감각되는 자극이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미치는 건강의 영향 같은 것들을 생각했다. 한 잔 커피를 마셨을 때 내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만으로 그 변화가 나쁘다,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었을 때 몸에 부담이 되고 몸에 부담이 쌓인 상태에서 외부의 스트레스 요인도 추가되었을 때 ‘난청’ 같은 증상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런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어떻게 건강 관리를 해야 할까. 건강 관리하면 운동을 열심히 해서 체력을 기르거나 보양식이나 영양제를 챙겨 먹는 것이 쉽게 떠오르지만, 사실 운동도 너무 열심히 하면 병이 나고 보양식과 영양제도 몸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건강을 챙기려고 뭘 더 하는 것보다는 일상에서 내가 먹고 마시는 것들을 바꾸고 오늘 몸의 상태를 체크하면서 운동과 일의 부하를 조정하고, 그날의 기온에 맞는 옷들을 입어서 몸에 부담이 덜 가는 루틴을 만드는 것이 낫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적에는 오늘 어떤 옷을 입을지 정할 때 내가 입고 싶은 스타일이 가장 중요했다. 일교차나 바람에 신경 쓰지 않고, 지금이 봄이면 봄에 걸맞은 코디로 입어야 하므로 추운 날에도 팔랑팔랑한 옷에 얇은 자켓만 걸치는 것… 그런데 지금은 일교차와 체감온도, 바람이 부는 정도를 따져서 어떤 옷을 입을지 정한다. 그리고 4월까지도 추운 날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코트 하나는 꼭 세탁하지 않고 남겨 놓는다.

이런 변화에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날씨에 맞춰서 옷을 입고 나가지 않았을 때 춥고 불편함을 느꼈던 경험이 쌓이면서 이렇게 된 것 같다. 예전에 내가 그런 기준으로 옷을 입었다는 점이 조금 신기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축적된 경험들로 나의 행동 양식이 바뀌기도 하는구나. 건강 관리도 그런 점에서는 큰 비결이 없다. 하루하루 몸의 컨디션을 체크하면서 내 몸에 부하가 덜 가는 선택들을 하는 것, 나이 들면서 몸이 변하고 이전의 루틴이 더 이상 맞지 않을 때 그 루틴에 변화를 주는 것, 그것이 전부가 아닐까. 아무튼 난청을 겪으면서 생각한 것은 ‘하루에 한잔 마시던 커피도 줄이는 편이 좋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커피를 마시고 있지만….)

연구 근황 : 각종 발표.

3월과 4월 동안은 학위 논문 주제와 관련된 생각들을 정리해서 공유하는 자리가 있었다. 먼저 내가 창의성에 관해서 쓴 글이 수록된 책이 출간되었다. 사단법인 음악미학연구회는 음악과 관련된 미학 혹은 인접 학문의 논문들을 편역/번역하는 작업을 해왔는데, 이번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음악적 창의성이었다. 창의성을 다루는 논문을 쓰고 있지만, 내 관심사는 이 개념의 의미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지, ‘창의성’이라는 말을 통해서 우리가 칭찬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즉 나는 창의성의 정의와 가치를 둘러싼 철학적 논의에 관심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음악, 조각, 회화, 등의 개별 예술의 영역에서 ‘창의적인’ 작업을 잘 탐색할 수 있는 섬세한 식별력과 개별 예술 장르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지 않으며(저는 미학 전공이지만… 아무튼 모릅니다.), 또 ‘창의적’이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교육학적 지식도 지니고 있지 않다. 다만 누군가가 ‘창의성’은 무엇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을 다면적으로 검토하고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결국 창의성의 철학이 하는 일이다. 이런 방법론적 관점에서 창의성에 관한 지식이 형성된 역사를 살펴보면서 내가 알게 된 사실과 생각을 정리해서 작년에 글을 한 편 보냈고, 그 글이 올해 4월에 출판이 되었다. 책 제목은 음악적 창의성이란 무엇인가?이며 이 책에 실린 내 글의 제목은 창의성의 실체를 찾아서이다.

창의성은 이곳저곳에서 중요하다고 언급되지만, 정작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손에 잡기가 어렵다. 내 글은 창의성이 정말로 실체가 있는지, 특히 창의성이 인간의 특별한 역량으로서 실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글이다. 나는 이 글에서 창의성에 관한 지식이 형성된 배경을 고려했을 때 우리가 무엇을 어떤 기준에서 ‘창의적’이라고 부르는지를 재고해 보고 그 기준이 무엇을 ‘창의적’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한지 어떤 조건이 창의성에 필요한지 숙고하는 게 중요하다는 철학 연구자스러운 결론을 내놓는다. 창의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글에서는 밝히지 않지만, 창의성에 대한 초기 심리학 연구와 그것이 지닌 문제가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들, 창의성이 언제부터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는지를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이 글이 어느 정도 효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창의성에 관한 입장은 4월에 있었던 한국미학회 춘계 학술 대회에서 더 구체적으로 밝혔다. 내가 지지하는 입장을 나는 창의성에 대한 ‘산물 중심 이론’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하면 어떤 사람이나 그 사람이 참여한 과정을 ‘창의적’이라고 부르려면 그것이 ‘창의적인 산물’로 귀결된 과정이거나 ‘창의적인 산물’을 만들어낸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입장에서는 ‘창의적인 산물’이 어떤 특징을 가지며 어떻게 성립하는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창의적인 산물이 행위자나 과정이 창의적인 이유를 설명하는 핵심적 이유이기 때문이다. 내 연구는 창의성에 대한 철학적 논의의 지형 안에서는 산물 중심 이론이 그다지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이 이론도 다른 이론들처럼 지지할만하다는 점을 보이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 산물 중심 이론에 대해서 제기된 의문들에 답할 수 있는 산물 중심 이론의 한 가지 버전을 발표에서 제시했다. 물론 이 이론은 아직 구체화될 부분이 많지만, 창의성에 관한 기존의 철학적 논의들을 검토하는 연구들을 지나서, 내 입장을 최초로 구체화한 연구라서 개인적으로는 의미가 있다. (논문은 올해 안으로 투고할 예정. 발표 영상은 학회에서 촬영을 했는데… 혹시 어딘가에 업로드가 되면 여기에도 공유를 하겠습니다.)

거대 도시를 지탱하는 지하의 구조물

4월의 어느 날에는 콜드플레이 내한 공연을 보러 갔다. 콜드플레이 공연을 보러 고양 종합운동장에 갈 때 GTX를 처음 타봤다. 1호선, 4호선, 공항철도 등 각종 지하철 노선들의 교차점으로 서울역의 지하는 포화상태라 GTX를 타려면 아주 깊이 내려가야 했다. ‘이렇게 깊게 내려가다 사고가 나면 과연 지상으로 탈출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에스컬레이터를 오래 타야 해서 에스컬레이터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승강장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지하철은 새 집 냄새가 좀 났지만 깔끔했고, 열차에 탄 사람들을 아주 빠르게 일산에 옮겨놓았다. 보통 일산에 가려면 넉넉하게 2시간은 잡고 지하철에서 멍 때릴 준비 단단히 해야 하는데, GTX는 그런 넉넉한 시간 감각의 종말을 고하는 노선이었다.

하지만 빠르고 편리한 것과는 별개로 점점 철도망이 지하로 내려가는 것이 괜찮을까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곳곳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건설되고 있다. 나의 동네 인근에도 30층이 넘어 보이는 고층 아파트가 완공되었다. 남양주, 인천, 하남 등 서울 주변 지역에서도 신도시 개발 및 아파트 분양이 이뤄지고 있고, 그곳에서 살아갈 사람들을 서울로 실어 나르기 위한 지하철 공사도 한창이다. 서울과 그 주변의 땅들은 끝없이 헤집어지고 있는데, 땅 위에 집을 튼튼하게 짓기만 하면 안전한 걸까? 나도 그렇게 헤집어진 땅의 한 구석에서 살아갈 것이고, 도시의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무슨 사고가 날지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설비를 철저하게 점검하고, 곳곳에서 나타나는 사고의 징후들을 무시하지 않는 것, 비용 절감을 위해서 시설 관리 인력을 과도하게 축소하지 않는 것, 그런 식으로 사회가 굴러가는지 시민으로서 감시하고 대형 참사와 사고를 잊지 않는 것이 최선일뿐이다. 아무튼 서울 곳곳에서 최근에 싱크홀이나 도로 갈라짐도 발생해서 그런지 이 땅 자체가 내가 딛고 설 수 있는 땅일까… 그런 생각을 했다. 위로는 점점 높아지고 아래로는 점점 깊어지는 도시의 단면도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로는 건물의 지하 공간과 지하의 철도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위로는 고층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도시의 단면. 나는 상상하기가 어려운데, 누군가가 이런 도시의 모습을 그려주면 좋겠다.

역대급 이미지의 일기…

나누고 싶은 것을 다 적을 수 없으니 사진으로 대신한다. 콜드플레이 공연은 좋았다. 라이브도 잘 하고, 보컬의 에너지가 좋다. 팬이 아니라고 해도 한번쯤은 가볼만한 공연.

하지만 웃겼던 점은 내가 콜드플레이 셋 리스트에 있는 노래보다 게스트로 온 트와이스 셋 리스트에 있는 노래를 더 잘 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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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일기 : 운동과 요리 회고.